0. 2025년을 한 줄로 정리하면
2025년은 제게 편안한 자리를 떠나 다시 배우는 자리를 고른 해였습니다.
IHFB에서 뤼튼테크놀로지스로 첫 이직을 했고, 데이터 엔지니어와 에이전트 개발자 사이에서 어떤 일을 중심으로 가져갈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글은 지난 한 해의 고민과 선택을 복기하고, 2026년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정리해보려는 기록입니다.
1. 첫 이직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건드렸다는 사실
솔직히 IHFB에 남는 선택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조직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데이터 관련해서는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밀어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데이터 팀장을 맡으면서 “이 회사 안에서는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도 분명했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연봉도 조금씩 오르고, 영향력도 커지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면서 꽤 오래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굳이 이 편한 구조를 깨야 할까?”
돌이켜보면,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한 검증
이직의 동기는 거창한 비전보다는 현실적인 필요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성과가 “이 회사 문맥에서 통하는 실력”인지, 아니면 “환경이 바뀌어도 통하는 실력”인지가 애매했습니다. 저는 그게 계속 걸렸습니다.
익숙한 기술 스택, 익숙한 문제, 익숙한 동료를 벗어나서 완전히 다른 기준을 가진 환경에서 다시 평가받아 보고 싶었습니다. 처우나 직함보다, 개발자로서 한 번은 그 검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2. 리셋된 경력과 적응 비용
뤼튼 합류 후 첫 3개월은 경력직이라기보다 “다시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코드 리뷰 기준도 다르고, 배포 프로세스도 다르고, 협업 속도도 다르고, 기술 스택도 달랐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익숙하게 하던 방식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감정으로만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건 내가 못해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새 환경에 들어가면 당연히 내야 하는 적응 비용”이라고 정의해두니 오히려 마음이 좀 정리됐습니다.
불필요하게 조급해지지 않고, 일단 팀의 프로토콜을 제대로 익히는 쪽으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1-3. 결론: 이직은 실험이다
이번 이직을 통해 확실해진 게 하나 있습니다.
이직은 회사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내 실력이 환경이 바뀌어도 통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에 더 가깝다는 점입니다.
팀장이라는 가짜 타이틀을 내려놓고 다시 배우는 입장이 된 2025년은, 결과적으로 커리어에서 꽤 밀도 높은 구간이었습니다.
2. Agent 개발자라는 커리어에 대한 막연함
2025년 한 해 동안 저는 두 가지 기술적 축을 동시에 쥐고 있었습니다. IHFB에서 선생님을 보조하는 에이전트 개발, 그리고 뤼튼 합류 후 진행한 사내 에이전트 개발로 대표되는 LLM/Agent/MCP의 축과, 기존에 해오던 Kafka/Airflow 중심의 전통적인 데이터 엔지니어링의 축입니다.
둘 다 재미는 있었는데, “장기적으로 뭘 중심으로 커리어를 잡을지”를 생각하면 느낌이 달랐습니다.
2-1. 어디까지 해야 ‘잘하는 에이전트 개발자’일까
이전 회사에서도 에이전트 관련 일을 했고, 이직한 뒤에도 사내 에이전트를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질문이 더 커졌습니다.
“이걸 어디까지 해야 잘하는 거지?”
가장 크게 걸렸던 건 기술의 수명과 대체 가능성이었습니다. 에이전트 관련 프레임워크나 도구는 너무 빨리 변하고, 제가 고민해서 구현하려던 방식이 얼마 안 가서 라이브러리나 SaaS로 더 쉽게 나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현할 수 있다”만으로는 차별화가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에이전트 개발을 주력 커리어로 삼았을 때, 3년 뒤 나는 뭘로 내 실력을 증명하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건지, 도구를 잘 붙이는 건지, 시스템을 잘 설계하는 건지,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잘 만족하는 것이지. 기준 자체가 아직은 모호하다고 느꼈습니다.
2-2. 척도가 없는 성장의 불안함
에이전트 개발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도구를 조합해서 맥락을 만들고, 자동화로 생산성을 올리는 과정은 재밌었습니다. 다만 커리어로 놓고 보면 불안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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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 10년 차 에이전트 개발자에게 시장이 기대하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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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가 고도화될수록 “직접 구현”과 “잘 활용”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이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확신 있는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에이전트 개발에 올인”하는 선택은 쉽게 못 하겠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3. 데이터 엔지니어: 선명한 성장 경로와 측정 가능한 깊이
반대로 데이터 엔지니어링 쪽은 상대적으로 경로와 기준이 더 또렷했습니다. 제가 무게 중심을 이쪽으로 정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그 부분이었습니다.
3-1. 데이터 엔지니어는 ‘무엇을 해결했는지’가 남습니다
데이터 엔지니어링도 유행이 바뀌고 도구가 바뀌지만, 결국 계속 남는 질문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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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과 볼륨이 커질 때 어떻게 스케일을 잡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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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나 이상 상황에서 데이터 정합성을 어떻게 지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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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과 성능을 어떤 방식으로 최적화했는지
•
조직의 복잡도에 맞게 구조나 기준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런 것들은 스택이 바뀌어도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3년 뒤를 상상했을 때도 비교적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3-2. 뤼튼이라는 환경이 준 확신
현재 몸담고 있는 뤼튼은 데이터 엔지니어로 성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트래픽과 다양한 형태의 비정형 데이터, 그리고 그 위에서 동작하는 AI 서비스까지 한 번에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Kafka, BigQuery, dbt, Airflow 같은 도구를 단순히 '쓸 줄 아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성능과 비용 효율을 극한으로 고민해야 하고, 데이터 메시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실무에 적용해 "우리 조직에 맞는 데이터 구조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이 환경 덕분에 저는 특정 도메인의 데이터 수집부터 품질 관리, 그리고 AI 서비스 활용까지 E2E로 책임지는 엔지니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본질로 삼고, Agent/LLM 역량은 그 위에 얹어지는 강력한 무기로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마무리
2025년 초에는 Agent 개발자와 데이터 엔지니어 사이에서 꽤 오래 흔들렸습니다.
1년을 지나고 나서 남은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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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의 중심은 “기준이 선명한 쪽”으로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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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있는 영역은 “도구와 이해도”로 얹어가자
저는 그 기준이 지금은 데이터 엔지니어링 쪽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커리어를 설명하는 언어는 트렌드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풀어냈는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2026년은 그 기준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보려고 합니다.